[주일설교, 2022.08.21, 김진영 담임목사] 다윗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 : 나단의 비유
1. 기본 정보
| 항목 | 내용 |
|---|---|
| 일자 | 2022년 8월 21일 (주일) |
| 설교자 | 김진영 담임목사 (서울중앙교회) |
| 설교 제목 | 다윗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 : 나단의 비유 |
| 성경 본문 | 사무엘하 12장 1-10절 |
| 함께 읽은 말씀 | 이사야 1:2-4 / 누가복음 7:36-47 / 고린도전서 15:10 |
| 영상 | https://youtu.be/5MuLKd2ySdE (설교 약 40분 + 기도) |
작성 근거: 유튜브 영상의 한국어 자동 자막 전체를 읽고 정리했습니다. 자동 자막은 고유명사와 성경 용어를 자주 틀리게 받아 적으므로(예: "나다 4 비율"→나단의 비유, "엘리 앞"→엘리압, "아 분해"→아브넬, "마리 새인"→바리새인, "감람 뉴"→감람유)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영상은 설교 말씀이 시작되는 부분부터 담겨 있습니다. 설교 중에 "다윗의 삶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고 하신 것으로 보아, 다윗의 생애를 이어서 살피는 연속 설교의 한 편입니다.
2. 한눈에 보는 설교의 흐름
| 순서 | 내용 |
|---|---|
| ① 초점 |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이 아니라 그 뒤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두어야 한다. |
| ② 공통점 | 나단의 비유 속 부자와 다윗은 둘 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큰 사람"이다. |
| ③ 비유 | 추석 식사 자리에서 제일 부자인 형이 제일 가난한 동생의 카드를 빼앗아 계산했다. 그것을 본 아버지의 마음. |
| ④ 죄의 본질 |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 아버지가 주신 은혜를 배신한 것이다. |
| ⑤ 다윗은 누구인가 | 자격이 있어서 택하신 것이 아니다. 내세울 것이 없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 주기에 딱 맞는 사람이었다. 살 만해지자 그 은혜를 잊었다. |
| ⑥ 기억할 것 첫째 | 하나님 눈에는 특별한 사람이 없다(사 1:2-4). 박수웅 장로의 유학 시절 이야기. 하나님은 "저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믿고 순종하기 원합니다" 하며 달라붙는 사람을 찾으신다. |
| ⑦ 기억할 것 둘째 | 신앙이 참된지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판가름 난다. 회칠한 무덤.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 |
| ⑧ 기억할 것 셋째 | 향유를 부은 여인(눅 7:36-47). 용서받으려고 부은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부었다. 바리새인에게는 은혜에 대한 이해와 감사가 없다. |
| ⑨ 은혜의 훈련 | 안식일을 지킨 힘으로 안식년을, 안식년을 지킨 힘으로 희년을 지킨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고전 15:10). |
| ⑩ 결론 | 가정 예배·매일 말씀과 기도·금요 기도회의 자리로. 예배는 자랑이 아니라 감사다.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 숙제가 아니라 기쁨과 감사가 되는 사람으로. |
3. 결론 — 받은 은혜는 같다, 은혜인 줄 깨달은 사람의 태도가 다르다
권면 — 은혜의 자리에 나오라
- 우리 교회에서는 가정 예배도 열심히 드리기를 애쓰고,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 생활을 하고 성경 읽기도 한다. 부담스러울지 모르지만 매일 1시간을 지키도록 꼭 해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속그룹 모임과 기도 시간에 꼭 애써서 오라고 하셨다.
-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회중이 웃자 목사님도 "왜 웃는지 아시죠? 무슨 말 할지 예상하시죠? 그리고 그 말이 귀찮을 거란 것도 이해하시죠?" 하고 받으셨다. 바로 금요 기도회다.
- "내가 아무리 못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온다"는 분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인은 자기의 생명을 다 부었는데, 나는 하나님 앞에 나오는 은혜의 자리에 한 달에 두 번 온다는 것인가.
- 권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서울중앙교회 교인으로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금요 기도회에는 하나님을 만나러 무조건 온다"는 결심을 한번 해 보라.
예배는 자랑인가 감사인가
- 주일 예배에 참석한 것이 감사인가 자랑인가? 감사다. "하나님, 저를 이 예배의 자리에 불러 주신 것 감사합니다. 예배를 통해 나의 정체성(아이덴티티)을 확인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새롭게 하셔서 천국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것이 주일 예배의 은혜다.
- 주일 예배에 참석한 다음에 "왜 너희들은 놀러 가고 안 오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주일 예배를 통해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에 옆 사람에게 "예배에 참석합시다" 하고 권유하는 것이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수고가 아니라 은혜가 더 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금요 기도회에 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무엇이 커지는가? 감사가 커진다. 그 시험을 한번 해 보라고 하셨다.
바리새인과 여인 — 받은 은혜는 같다
- 바리새인과 여인이 받은 은혜가 다른가, 같은가? 똑같다. 예수님은 이 바리새인을 위해서도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이 여인을 위해서도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 받은 은혜와 사랑이 달라서 사랑이 다른 것이 아니다. 똑같은 은혜와 사랑을 받았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가 은혜인 줄을 깨달았을 때 그 태도가 다르게 나오는 것이다.
- 그 은혜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해야 한다.
- 지금까지 살아온 내 신앙의 스타일이 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바리새인처럼 "이 정도로 예수님을 대접하면 충분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은 바리새인과 같은 자리에 머무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 하나님의 살아 있는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은 이 여인처럼 "내가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다 드린다 할지라도 나에게 주신 은혜를 갚을 길이 없는데, 이것을 감사함으로 드립니다. 나의 시간과 생명을 드립니다" 하는 사람이다.
- 나의 모든 것을 다 드리는 것이 자랑이 아니고, 숙제가 아니고, 기쁨과 감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마음의 중심을 아신다. 그렇게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란다.
4. 함께 드린 기도 제목
설교 끝에 한 가지 기도 제목을 주시고 함께 기도했다.
- 여인에게 주셨던 은혜 — "하나님, 저에게 이 여인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주십시오. 나의 모든 것을 주를 위해 다 부어 드려도 내가 받은 은혜를 다 감사할 수 없습니다. 이 은혜의 자리에 저를 붙잡아 주십시오."
마무리 기도: 우리의 귀를 열어 주셔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해 주시기를,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삶에서 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나의 나 된 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기억하며 감사한다는 고백, 이번 한 주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은혜를 주시기를, 은혜에 감사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그 여인처럼 감사함으로 나의 삶을 온전히 드리며 살기를, 바리새인처럼 은혜에서 떨어진 자리에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하시고 참 은혜의 자리, 감사의 자리에 붙잡아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 (기도 중간에 자막이 끊겨 들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
5. 성경 본문 (사무엘하 12:1-10) 줄거리
본문은 개역개정 성경의 내용을 풀어서 요약한 것입니다. 정확한 문장은 성경을 직접 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구절 | 내용 |
|---|---|
| 12:1 | 여호와께서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다. 나단이 가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했다. |
| 12:2-3 |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았다. 가난한 사람은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밖에 없었다. 그 암양은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고 그의 잔으로 마시고 그의 품에 누워, 그에게는 딸과 같았다. |
| 12:4 | 부자에게 나그네가 왔다. 부자는 자기의 양과 소는 아껴 두고, 가난한 사람의 암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손님을 위해 잡았다. |
| 12:5-6 | 다윗이 그 사람 때문에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말했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건대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다.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런 일을 했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로 갚아 주어야 한다. |
| 12:7-8 | 나단이 말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고 사울의 손에서 구했다.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다. 그것이 부족했다면 내가 이것저것을 더 주었을 것이다. |
| 12:9 | 그런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했느냐. 네가 헷 사람 우리아를 칼로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 |
| 12:10 |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으므로,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않을 것이다. |
6. 설교 내용 정리
6-1. 도입 —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을 두라
신앙생활을 할 때 항상 의식해야 할 것이 있다.
- 성경을 읽거나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람에게 초점을 둔다. 특별히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 초점을 둔다.
- 믿음이 좋은 사람이 한 행동을 보고 "나도 그렇게 해야 되겠다"고 교훈을 얻고 따라 한다. 참 잘하는 일이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잘못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는 "나에게 그런 모습이 있지 않은가" 돌아보며 회개해야 한다.
- 그런데 거기에서 머물면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설교를 듣거나 성경을 읽을 때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초점을 두려고 애써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말씀한다. 위대한 인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인물을 위대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씀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람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을 할 때 나의 모든 관심은 이 모든 일을 뒤에서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 본성으로는 안 된다. 그래서 말씀을 듣거나 성경을 읽을 때 성령님께 꼭 기도해야 한다. "저의 귀를 열어 주시고 저의 눈을 열어 주셔서, 지금 내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야 믿음 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다.
6-2. 나단의 비유 — 부자와 다윗의 공통점은 "받은 은혜가 큰 사람"
나단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와 다윗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큰 사람이라는 점이다.
-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 나단의 비유를 들으면, 저 사람이 저렇게 소와 양이 많고 부유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하나님이 은혜와 복을 더해 주신 것이다.
- 다윗이 왜 이렇게 부유하고 유명하고 영예로운 왕이 되었는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큰 것이다.
6-3. 추석 식사 자리의 비유 — 아버지의 마음
나단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다며, 목사님은 추석의 한 가정을 가정해 보자고 하셨다.
- 열두 명의 아들딸을 둔 아버지가 있다. 추석에 아버지 어머니가 열두 형제자매를 다 불렀다. 형제자매들이 남편과 아내, 자녀와 손자 손녀까지 다 데리고 아버지 집에 모였다. 많으면 50명, 100명이 모였을 것이다.
- 추석을 맞아 좋은 음식점에 가서 온 가족이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식사를 했다.
- 열두 형제자매 가운데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과 도움을 가장 많이 받아 제일 부자로 사는 아들이 있다. 모든 형제자매가 안다. "저 형이, 저 오빠가, 저 동생이 우리 집에서 제일 부자이고 아버지께 받은 은혜와 축복도 제일 많다."
- 식사를 마치니 음식값이 엄청나게 나왔다. 그런데 제일 부자인 형이, 열두 명 가운데 제일 가난한 동생, 직장도 변변치 못해 계약직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그 동생의 카드를 빼앗아 그것으로 계산해 버렸다.
그 행동을 아버지가 보았을 때 아버지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저놈은 내 아들도 아니다, 배신자다"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저 아들에게 준 은혜가, 준 사랑이 얼마인데. 다른 모든 아이보다 저 아들에게는 갑절, 열 배, 수백 배의 유산을 주고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었는데." 자기는 밥값 내는 것이 아무 문제도 아닌데 제일 가난한 동생의 카드를 빼앗아 계산해 버리고 나가는 것을 볼 때, 이것은 배은망덕한 아들이다.
나단을 통해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시는 말씀이 바로 그 말이다.
6-4. 다윗의 죄는 무엇인가 — 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
-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본질이 그렇다.
- 다윗은 나중에 회개할 때 "내가 하나님께만 범죄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아에게는 죄를 안 지었는가? 밧세바에게는 죄가 아니었는가? 그런 뜻이 아니다. 죄의 본질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내가 깨뜨리는 것이라는 말이다. 아버지가 주신 모든 은혜를 완전히 배신한 것이다.
- 하나님이 다윗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주었다. 네가 원했다면 더 주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6-5. 다윗은 자격이 있어서 택함받은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하시는 말씀은 "너는 자격이 있어서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 사무엘의 눈에 왕이 될 사람은 장남 엘리압이지 다윗이 아니었다.
- 아버지 이새가 볼 때에도 왕이 될 재목은 장남이지 막내 다윗이 전혀 아니었다.
- 성경이 하는 말을 자세히 들어 보라. 다윗이 제일 뛰어나고 제일 쓸모 있고 제일 믿음이 좋아서 선택하신 것이 아니다. 제일 가치나 자격이 없는데도 하나님이 택하신 것이다.
"사울의 손에서 너를 건져 주지 않았느냐"
- 하나님이 사울의 손에서 보호해 주지 않으셨으면 다윗은 죽어도 몇 번을 죽었다. 안 죽을 수가 없다.
- 믿음이 없어서 블레셋으로 도망갔을 때, 미친 흉내를 내며 목숨을 구걸할 때,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셨으면 다윗은 죽었다.
- 그 정도로 별 볼 일 없던 올챙이 적 시절을 생각하면 다윗은 하나님께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중요하시지 다윗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너를 왕으로 세웠다"
- 다윗이 자기 힘으로 아브넬을 이길 수 있었는가? 자기 전략으로 북쪽 이스라엘 지파를 다 데려올 수 있었는가? 그럴 수 있었다면 왜 7년 6개월 동안 아무 일도 못 하고 있었는가?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의 뜻
하나님이 다윗을 두고 "내 마음에 딱 맞는 사람이다"라고 하신 것은 이런 의미다.
- 내세울 것이 없고 자격도 없고 뛰어난 것도 없어서, 이 다윗과 함께 일하면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보여 주기에 딱 맞는 사람이다.
- "제발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눈으로 읽도록 애를 쓰십시오."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맞는 것은, 형들에 비하면 자랑할 것이 별로 없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헤쳐 나갈 능력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은혜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 주기에 딱 맞는 사람이 다윗이다.
그런데 그 은혜를 배반했다
- 왜 배반했는가? 살 만하니까 그렇게 된 것이다. 올챙이 적 시절을 다 잊어버린 것이다.
- 가난하고 힘들 때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안다.
- 그런데 넉넉하고 힘이 있고 어느 정도 가진 것이 많으면 우리의 본성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는다. 우리의 본성 자체에는 하나님을 높이는 마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
오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기억해야 할 것 세 가지를 생각해 보자고 하셨다.
6-6. 기억할 것 첫째 — 하나님 눈에 특별한 사람은 없다
(회중과 함께 이사야 1:2-4를 한 절씩 교독. 범죄한 이스라엘·유다 백성을 향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2절)
- 소도 그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3절)
-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4절)
이사야의 말씀은, 그렇게 회개하라고 하시는데도 회개하지 않고 죄 가운데 있는 백성의 신앙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소도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자기에게 은혜를 내려 주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지 못한다.
목사님은 구절마다 물으셨다. "누구 이야기죠? 다윗 이야기죠." 범죄한 나라, 허물 진 백성, 행악의 종자, 행위가 부패한 자식, 여호와를 버리고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간 사람. 지금 다윗의 이야기다.
다윗은 특별한 종자가 아니다
- 다윗은 하나님 보시기에 특별한 종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다윗이나 엘리야나 우리나 다 똑같다. (이 대목의 이름은 자막에 '엘리아', '일리아'로 들린다.)
- 특별한 믿음이 있는 종자, 하나님 나라에 쓸 만한 사람,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세상적으로 볼 때 능력 있고 유용한 사람을 하나님은 찾지 않으신다. 의도적으로 찾지 않으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본성이다.
- 다윗의 삶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데, 성경을 읽을수록 "그래도 하나님은 다윗과 같은 사람을 쓰시네"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다윗과 같은 사람을 쓰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알아 갈수록 그 의미가 바뀌어야 한다.
박수웅 장로의 이야기
목사님이 이민 교회를 섬길 때 부부 청년들과 함께 지냈다. 결혼한 사람들의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자녀 문제와 부부 싸움이어서, 박수웅 장로라는 분을 모시고 세미나를 가진 적이 있다. 장로님은 그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열등감이 어떻게 치유되었는지를 이야기했다.
- 그분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가고 싶어 열심히 공부했는데 떨어져서 지방에 있는 의과대학에 가게 되었다. 서울대 의대가 아니라 지방 의대를 나왔다는 것이 의사로 살아가면서 늘 열등감이었다.
- 기회를 얻어 미국의 유수한 의과대학에 유학을 갔다. 함께 유학 온 사람들은 다 이른바 '스카이' 출신, 서울대나 일류 대학 의과대학을 마치고 온 사람들이었고, 자기만 지방대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 열등감에 미국 교수님에게 고민을 말했다. "교수님, 저는 한국에서 왔지만 같이 유학 온 한국 학생들에 비하면 지방 대학 출신입니다. 저는 수준이 많이 떨어집니다." 그때가 1970년대였다.
- 그때 미국 교수님이 해 준 말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1970년대에는 한국과 미국의 의료 수준 격차가 지금보다 훨씬 컸다. (목사님은 "지금은 우리나라가 잘하지 않습니까. 저는 잘한다고 믿습니다"라고 덧붙이셨다.)
- 교수님의 말: "우리가 볼 때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서울대 의대를 나왔든지 지방대 의대를 나왔든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한국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볼 때 여러분은 오십보백보, 대동소이합니다.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 나라에서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연구해서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의사로 훈련받고 잘 따라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의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 그 말을 듣는 순간이 장로님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신앙이 그렇다
- 하나님 눈에는 우리가 다윗같이 뛰어나지 않고, 엘리야처럼 훌륭하지 않고, 바울처럼 열심이 있지 않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다. (목사님은 "표현이 죄송합니다. 강조하느라 그렇습니다"라고 하셨다.) 우리는 다 죄인이고 다 쓸데없다.
-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딱 한 사람이다. "하나님, 저는 정말로 부족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기를 원하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믿고 믿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딱 달라붙는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신다.
- 그러므로 성경을 보거나 교회를 볼 때, 믿음으로 살아갈 때, 사람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을 쓰시는 하나님을 보라.
부족한 사람에게, 그리고 받은 것이 많은 사람에게
-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부족함과 연약함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도 나 같은 사람을 가지고는 어쩔 수 없을 거야"라고 하는 것은 겸손한 것이 아니라 무식한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고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다.
- 반대로 내가 받은 은혜가 많고 실력과 재능이 있다면,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런 복과 은혜를 주셨는데 이것을 가지고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물어야 한다.
- 추석에 가족이 모였으면 "돈은 당연히 내가 내야 하는구나. 내가 받은 은혜가 많으니까. 나는 수천 마리의 양이 있으니까" 하며 사는 것이다. 그리고 내면서 "자, 오늘은 내가 쐈다"가 아니다. "나는 아버지께 받은 은혜가 많습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수고하고 희생하고 짐을 져야 한다면, 이 짐을 넉넉히 질 수 있는 은혜를 아버지께서 주셨습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도 자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사가 있다.
- 하나님을 믿고 은혜 안에 살아가는 사람의 특징은 자랑과 교만이 아니라 감사다.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살아가는 사람이다.
다윗은 왜 그것을 잃어버렸는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될 만한 것들이 나에게 있을 때 우리는 넘어진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 하나님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으신다.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믿고, 그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도 일하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 나와 "저를 마음껏 써 주십시오.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이다.
- "하나님, 저 같은 사람이 이 정도 되었으니 교회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도움이 전혀 안 된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통해 일하지 않으신다.
- 자기는 열심히 일했는데 나중에 하나님이 "나는 너를 쓴 적이 없다"고 하신다. 정말로 비참하고 조심해야 할 말씀이다. "내가 주를 위해 선지자 노릇 했습니다. 주를 위해 목사와 선교사와 장로와 집사와 권사로 일을 많이 했습니다." "아니다. 너는 너 좋을 대로 했다." 하나님이 딱 잘라 말씀하실 때가 있다. 돌아보아야 한다.
6-7. 기억할 것 둘째 — 신앙의 참됨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판가름 난다
목사님은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이 왜 이 말씀을 자꾸 반복하게 하시나" 스스로도 의아스러웠고 피해 가고 싶었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 이 사람이 정말로 믿음 생활을 바르게 하는지, 아니면 외식하는 신앙인인지는 내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그 태도에서 판가름 난다.
- 새벽 기도, 기도 생활, 성경 공부, 소그룹, 십일조, 봉사, 직분자로서의 일을 열심히 한다. 그런데 집에서 아내를 함부로 대한다. 남편을 함부로 대한다. 교회에서는 훌륭한 장로님, 목사님, 집사님, 권사님인데 집에 가서는 자녀를 슬프게 하고 함부로 대한다. 부모님에게 무관심하다.
- 그런 사람을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 같다고 경고하신다. 무덤을 겉으로는 아름답게 잘 꾸며 놓았는데, 그 안에 들어가면 썩은 시체가 있다.
-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생활, 교회 봉사, 믿음 생활을 모두 잘한다. 이렇게 잘하니 아름다운 것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집에 들어가 보았더니, 집에서는 아내와 남편을 함부로 대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고 무례히 행하고 상처를 주고 있다. 그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져 있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은혜를 정말로 아는 아들이라면
-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을 정말로 알고, 지금 이 자리에 그 아버지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안다면, 그 아들은 동생의 카드를 빼앗지 않는다.
- 오히려 돈을 내려는 동생들을 막아서라도 "아니다,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내가 아버지께 받은 사랑이 크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아버지 보시기에도 아름다운 모습이다"라고 한다.
-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사람,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 성경 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안 사람은 동생들을, 형제자매를, 교인을 대하는 태도와 말씨가 완전히 바뀌게 되어 있다. 정말로 조심해야 한다.
은혜 안에 있을 때의 다윗, 은혜를 떠났을 때의 다윗
-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을 때에는 원수의 아들을 살리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떠났을 때에는 충성된 부하를 죽이도록 시키는 정말 악한 자리에 떨어진다.
- 왜 그런가?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없는 것이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
- 이 말씀을 "성경을 많이 알고 신학을 많이 알고 열심히 성경 공부 하면 세력을 얻는다"는 뜻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 안에 세력을 얻으시는 것이다.
- 직장에 있든지 가정에 있든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을 때에는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 안에 살아 계신 것이다.
- 정말로 우스운 사람은, 성경은 많이 알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성경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니 비판하고 무례히 행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바리새인처럼 살아 있는 것이다.
- 바리새인들은 말씀과 경건이 다 살아 있다. 경건에 '폼'이 있다. 그런데 그 폼이 자기를 자랑하는 쪽으로 가지, 내 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높이는 쪽으로 나오지 않는다.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
- 경건의 능력을 가지려면 경건의 모양이 있어야 한다.
- 경건의 모양은 가졌는데 능력이 없는 사람을 보면서 "기도할 필요 없잖아. 왜 밤새워 기도하나. 성경을 읽을 필요도 없잖아. 저 사람이 저렇게 성경을 많이 알아도 저렇게밖에 안 되잖아. 그러니 날마다 기도하거나 성경 읽거나 소그룹으로 모이거나 할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은 무지한 것이다.
- 경건의 모양 자체가 없는 것은 바리새인보다 못한 자리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을 함께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은혜 안에 있다는 것은 무엇으로 드러나는가
- 주위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로 드러난다. 비판하고 판단하고 무시하는지, 귀히 여기며 위로하며 살리고 있는지.
- 특별히 가정에서 그렇다. 우리 교회에 젊은 부부가 많은데, 가정에서 자녀들을 대할 때, 교회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대할 때, 그때 내 마음을 보라.
- 하나님은 내 마음을 정확하게 아신다. 내가 외식하는 시험에 빠져 있는지 참 은혜 안에 있는지, 주님이 말씀을 통해 일깨우신다.
6-8. 기억할 것 셋째 — 향유를 부은 여인: 용서받으려고가 아니라 용서받아서
(마지막으로 누가복음 7:36-47을 한 절씩 교독.)
-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여, 예수님이 그 집에 들어가 앉으셨다.
-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
- 예수님을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속으로 말했다. 이 사람이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여자인지, 곧 죄인인 줄 알았을 것이다. (이 구절을 읽고 목사님은 "전형적인 외식하는 사람"이라고 짚으셨다.)
- 예수님이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선생님, 말씀하소서" 했다.
-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 있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해 주었다.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 예수님이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았다.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다.
-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
하나님의 눈으로 바꾸어 읽으라
- 이 본문을 그냥 읽으면 "여인처럼 예수님께 향유를 많이 가져다 부어야겠구나. 헌금을 좀 더 많이 해야겠구나"로 적용하기 쉽다. 그것을 본받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이것을 보고도 "그 여자는 그렇겠지만 나는…" 하는 것은 좋지 않다.
- 그런데 거기에서 하나님께로 눈을 돌려 성경을 다시 읽어 보라.
왜 이 여자는 이런 놀라운 일을 했는가
- 이 여자는 눈물로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고, 감람유가 아니라 향유를, 머리가 아니라 발에 부었다. 왜 그랬는가? 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했는가?
- 조금만 더 나가 보자. 그 정도의 희생과 대가를 지불하면 하나님 앞에 지은 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어떤 헌금을 하고 어떤 향유를 부어도, 내가 지불한 향유로 내 죄가 용서받는 것이 아니다.
-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 이 여자는 자기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께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안다.
-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군요.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군요"라는 큰 은혜와 복음이 이 여자를 바꾼 것이다. 이것이 성령님의 은혜다.
- 시몬이 말했듯이 이 여인은 온 동네가 아는 죄인, 온 동네가 아는 나쁜 여자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시고 내 죄를 사해 주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받아 주셨다는 그 큰 은혜와 사랑이 이 여자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 "내가 받은 이 은혜에 어떻게 하면 보답할까" 하여 눈물을 흘리며 향유를 발에 부은 것이다.
- 향유를 부은 것이 이 여자에게 자랑인가? 아니다. 감사다.
- 예수님은 그 여자의 중심을 아신다. 향유를 부어서 죄를 사해 달라고 조건으로 붓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여 자기의 전부를 드리고 있고, 이것을 드림으로써 그 큰 은혜에 조금이나마 감사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시고, 이 여자의 믿음이 참 믿음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신다.
바리새인 — "이 정도면 충분하다"
- 바리새인은 "이 정도로 예수님을 대접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교인이다. "나는 교육받은 바리새인이고 예수님은 갈릴리 촌 출신인데, 우리 집에 한번 초청한 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이 정도 식사 대접한 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중심도 아신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은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 이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초청할 정도로 똑똑하고 경건할지는 몰라도, 그의 모든 경건 속에는 자기 자랑이 있지, 하나님이 자기를 바리새인 되게 하시고 자기에게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가 전혀 없다.
- 그러므로 바리새인은 바리새인의 의를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이지, 바리새인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6-9. 은혜의 훈련 — 안식일, 안식년, 희년
지난 금요일에 희년에 관해 말씀을 전하셨다며 이렇게 설명하셨다.
- 50년에 한 번 오는 희년은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것이다. 그 희년을 지키라고 하셨을 때 지킬 수 있는 길이 있다.
- 7년에 한 번 오는 안식년을 은혜로 지키면 희년을 지킬 용기가 생긴다. 안식년을 믿음으로 일곱 번 지켰다면, 희년이 왔을 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엄청난 것을 지킬 힘이 있다.
- 안식년을 지킬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안식일을 지키는 은혜를 통해서다.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예로 고3을 드셨다. 엿새 동안 힘써 학업을 준비하고, 일곱째 날은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공부하지 않고 학원에 가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며 말씀을 배우며 믿음으로 주일을 성수하는 훈련을 했다. 그렇게 매주 살아 1년, 2년, 7년을 살았다. 7년의 세월을 돌아보니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던 나에게 주신 은혜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안식년을 지킬 수 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 없이 안식년만 지키려고 하면 불가능하다.
(고린도전서 15:10을 함께 읽음. 목사님은 이 구절을 다 같이 암송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이다. 사도가 된 것,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살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회개도 하나님의 은혜다.
- 그래서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 제게 이런 은혜를 주십시오."
-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은 이 은혜 안에 거하기 위해 다른 모든 교인보다 더 많이 수고하는 사람이다. "은혜 안에 거한다"고 하면서 기도 생활, 말씀 배우는 것, 교회 생활, 봉사에 등한한 것은 은혜를 떠난 것이다.
- 이 여인을 보면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이 여인의 사랑에 비하면 나의 사랑은 바리새인과 같구나" 깨닫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겠습니다" 하며 하나님 앞에 더 간절히 나가는 것, 그 수고를 하는 것이 은혜다.
- 그런데 나중에 뒤돌아보니, 내가 이렇게 수고하며 은혜의 자리에 나가게 된 것이 내 사랑이 아니라 "이것조차 은혜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은혜를 아는 사람이다.
이어서 결론의 권면(3장)으로 이어진다.
7. 참고자료
설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설교에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아닌 부분은 성경 본문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경 연구 자료에 근거했습니다. 연대는 학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약"으로 표기했습니다.
7-1. 역사 배경
나단의 비유가 나오기까지 (다윗의 통치는 주전 약 1010~970년)
| 사건 | 내용 | 성경 |
|---|---|---|
| 기름 부음 |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가서 장남 엘리압을 보고 "이 사람이구나"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고 막내 다윗을 택하셨다. 설교의 "사무엘의 눈에도, 이새의 눈에도 다윗이 아니었다"가 이 장면이다. | 삼상 16:1-13 |
| 사울을 피한 도피 | 다윗은 여러 해 동안 사울에게 쫓겼다.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에게 갔다가 두려워 미친 체하며 대문짝에 그적거리고 침을 수염에 흘린 일도 있다. 설교의 "미친 흉내"가 이 일이다. | 삼상 21:10-15 |
| 헤브론의 7년 6개월 | 사울이 죽은 뒤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만의 왕이 되었다. 북쪽 지파들은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이 세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따랐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다스린 기간이 7년 6개월이다. | 삼하 2:1-11, 5:5 |
| 온 이스라엘의 왕 |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죽은 뒤 북쪽 지파 장로들이 헤브론에 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다윗이 싸워서 얻은 결과가 아니었다. | 삼하 3-5장 |
| 밧세바와 우리아 | 암몬과 전쟁 중에 다윗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다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고, 임신 사실을 감추려다 실패하자 우리아를 격전지 맨 앞에 세워 죽게 하라는 편지를 요압에게 보냈다. | 삼하 11장 |
| 나단의 책망 | 오늘 본문.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자백했다. | 삼하 12:1-15 |
- 설교의 "내가 하나님께만 범죄하였다"는 이때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시편 51편의 고백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시 51:4).
- 설교에서 "은혜 안에 있을 때 원수의 아들을 살렸다"고 하신 것은,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 했던 사울의 집안 사람인 므비보셋(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을 찾아 왕의 상에서 먹게 한 일(삼하 9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충성된 부하"는 우리아다.
7-2. 지리
| 지명 | 설명 |
|---|---|
| 예루살렘 |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뒤 정한 수도. 왕궁 옥상에서 밧세바를 본 곳이며 나단이 찾아온 곳이다. |
| 헤브론 | 예루살렘 남쪽 약 30km의 유다 산지 성읍. 다윗이 유다의 왕으로 7년 6개월을 다스린 곳. |
| 베들레헴 | 다윗의 고향. 이새의 집이 있던 곳으로,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곳. |
| 가드 | 블레셋의 다섯 성읍 가운데 하나. 골리앗의 고향이며, 다윗이 사울을 피해 갔다가 미친 체한 곳. |
| 랍바 | 암몬 자손의 수도(오늘날 요르단의 수도 암만). 우리아가 전사한 싸움터. |
| 갈릴리 | 이스라엘 북부 지방. 예수님이 자라시고 주로 사역하신 곳. 예루살렘 중심의 종교 지도자들은 갈릴리를 변두리로 낮추어 보았다(요 7:52). 설교의 "갈릴리 촌 출신"이 이 배경이다. |
7-3. 인물
| 인물 | 설명 |
|---|---|
| 나단 | 다윗 시대의 선지자. 다윗의 집을 영원히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삼하 7장)을 전한 사람이며, 왕의 죄를 면전에서 지적했다. 뒤에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는 일도 도왔다(왕상 1장). |
| 우리아 | 헷 사람(이방 출신)이지만 다윗의 뛰어난 용사 명단에 오른 군인(삼하 23:39). 전쟁 중인 동료들을 생각해 자기 집에 내려가 쉬기를 거절할 만큼 충직했다(삼하 11:11). |
| 밧세바 | 우리아의 아내. 뒤에 다윗의 아내가 되어 솔로몬을 낳았다. |
| 엘리압 | 이새의 맏아들, 다윗의 큰형. 용모와 키가 뛰어났다(삼상 16:6-7). |
| 이새 | 다윗의 아버지. 베들레헴 사람. |
| 사울 | 이스라엘의 첫 왕.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 했다. |
| 아브넬 | 사울의 사촌이자 군대 장관. 사울이 죽은 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워 다윗과 맞섰다. 뒤에 다윗 편으로 돌아서려다 요압에게 죽임을 당했다(삼하 3장). |
| 엘리야 | 북이스라엘 아합 왕 때의 선지자.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맞선 인물(왕상 18장). |
| 바리새인 시몬 | 예수님을 식사에 청한 사람(눅 7:40). 베드로(시몬)와는 다른 사람이다. |
| 죄를 지은 한 여자 | 누가복음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막달라 마리아나 베다니의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라고 볼 근거는 본문에 없다. |
7-4. 문화
나단의 비유와 다윗의 판결
- 가난한 집에서 암양 새끼를 식구처럼 기르는 모습은 당시 듣는 이들에게 낯설지 않은 그림이었다. 나단은 재판을 청하는 형식으로 이야기했고, 왕은 최고 재판관으로서 판결을 내렸다.
- 다윗이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한다"고 한 것은 율법의 배상 규정에 따른 것이다. 양 한 마리를 훔쳐 잡거나 팔면 양 네 마리로 갚아야 했다(출 22:1). 다윗은 율법을 잘 알고 있었고, 그 율법으로 자기 자신을 판결한 셈이 되었다.
손님 대접의 관습 (눅 7:44-46)
| 관습 | 설명 |
|---|---|
| 발 씻을 물 | 샌들을 신고 흙길을 걸었으므로 손님이 오면 발 씻을 물을 내는 것이 기본 예의였다. |
| 입맞춤 | 환영의 인사. |
| 머리에 기름(감람유) | 감람유는 올리브기름이다. 귀한 손님의 머리에 발라 주었다. 값싸고 흔한 기름이다. |
| 향유 | 향료를 넣은 값비싼 기름. 옥합(설화 석고로 만든 병)에 담아 보관했다. 시몬은 흔한 감람유도 내지 않았는데 여인은 값진 향유를 부었다는 대조다. |
- 당시 잔치 자리에서는 낮은 상 둘레에 비스듬히 기대어 누워 먹었으므로 발이 뒤쪽으로 뻗어 있었다. 여인이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설 수 있었던 까닭이다.
- 여자가 사람들 앞에서 머리를 풀어 내리는 것은 당시에 점잖지 못한 일로 여겨졌다. 여인은 체면을 내려놓았다.
- 예수님의 비유에서 두 빚은 오백 데나리온과 오십 데나리온이다(눅 7:41).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다.
회칠한 무덤
유대인은 무덤에 닿으면 부정해진다고 여겨(민 19:16) 사람들이 모르고 밟지 않도록 무덤에 흰 회를 발라 표시했다. 겉은 희고 깨끗해 보이지만 안은 죽은 사람의 뼈로 가득하다는 것이 예수님의 책망이다(마 23:27-28).
7-5. 신학 용어
| 용어 | 풀이 |
|---|---|
| 섭리(攝理) |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과 사람의 모든 일을 붙드시고 다스려 그분의 뜻대로 이끄시는 것. 설교의 "뒤에서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이 뜻이다. |
| 은혜(恩惠) |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거저 베푸시는 사랑과 선물. |
| 배은망덕(背恩忘德) | 받은 은혜를 저버리고 베푼 덕을 잊음. |
|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삼상 13:14),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행 13:22). 설교는 이것을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은혜로 살 수밖에 없음을 보여 주는 사람'으로 풀었다. |
| 만홀(漫忽)히 여기다 | 업신여기다, 소홀히 여기다. 이사야 1:4의 표현. |
| 외식(外飾) | 겉으로만 꾸미는 것, 위선.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책망하실 때 쓰신 말이다. |
| 경건의 모양과 능력 |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딤후 3:5). 모양은 기도·말씀·예배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생활이고, 능력은 그것이 삶과 사람됨을 실제로 바꾸는 힘이다. |
|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 |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 19:20). 에베소에서 복음이 퍼져 사람들이 마술 책을 불사르던 때의 기록이다. |
| "너를 쓴 적이 없다" | 설교의 이 말씀은 마태복음 7:22-23을 풀어 말씀하신 것으로 보인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하겠으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라고 하신다는 말씀이다. |
| 사(赦)하다, 탕감(蕩減) | 사하다는 죄를 용서하다, 탕감은 빚을 없애 주다. |
| 자기 의(自己義) | 자신의 선행과 종교적 열심을 하나님 앞에 내세울 공로로 삼는 태도. 설교의 "바리새인의 의"가 이것이다. |
| 언약(言約) |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맺으신 약속의 관계. |
| 안식일·안식년·희년 | 안식일은 이레 가운데 일곱째 날의 쉼(출 20:8-11). 안식년은 일곱째 해에 땅을 쉬게 하는 것(레 25:1-7). 희년(禧年)은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다음 오십 년째 해로, 팔렸던 땅이 본래 주인에게 돌아가고 종 되었던 사람이 자유를 얻는 해다(레 25:8-17). |
| 주일 성수(聖守) | 주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는 것. |
8. 정리하며 확인할 점
- 영상 자동 자막의 인식 오류로 일부 표현과 고유명사, 교독 부분은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설교자의 표현과 미세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눈에는 다윗이나 ○○나 우리나 똑같다"는 대목의 이름은 자막에 '엘리아', '일리아'로 들립니다. 뒤에 "엘리야처럼 훌륭하지 않고 바울처럼 열심이 있지 않다"는 말씀이 이어지므로 엘리야로 적었으나, 앞에서 언급된 다윗의 형 엘리압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 '박수웅 장로'는 자막에 두 번 같은 이름으로 들려 그대로 적었습니다. 서울대 의대, 지방 의대, 1970년대 미국 유학 등의 내용은 설교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 결론의 "매일 1시간"과 "속그룹 모임"은 자막이 분명하지 않아("매일 1시간 시키도록", "서울은 모임에") 문맥에 맞추어 적었습니다. 영상으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 이사야 1장 교독 범위는 자막에 "2절부터 4절"로 들리고 읽은 내용도 2~4절에 해당합니다. 누가복음 7장 교독은 자막에 일부 구절만 잡혀서, 말씀하신 범위(36-47절)의 내용을 성경에 맞추어 풀어 적었습니다.
- 마무리 기도 중간에 자막이 끊긴 부분이 있어 들리는 범위만 정리했습니다.
- 2~4장과 6장(설교 흐름·결론·기도 제목·설교 내용 정리)은 설교에서 실제로 말씀하신 내용만 담았고, 7장 '참고자료'는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원수의 아들"을 므비보셋으로, "너를 쓴 적이 없다"를 마태복음 7장으로 연결한 것은 작성자의 풀이이며 설교에서 직접 밝히신 것은 아닙니다.
- 참고자료의 연대는 학자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다릅니다.